유비쿼터스는 유토피아인가?
글/따뜻한 디지털 세상
2004년 03월 03일 09시 48분
인터넷 혁명이 가져다준 충격과 변화에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있는 인류에게 정보통신 기술은 또 다른 혁명을 예고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컴퓨터 네트워크에 접속이 가능한 유비쿼터스 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유비쿼터스는 인류에게 보다 더 편리하고, 보다 더 풍요롭고, 보다 더 행복한 세상을 약속할 것이라는 유토피아적 메시지와 함께 성큼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유비쿼터스의 세계가 그저 유토피아이기만 한 것일까? 유비쿼터스의 장밋빛 약속 뒤에 드리워질 어두운 그늘을 하나씩 짚어보자.
1. 전자감시와 프라이버시 침해가 편재하는 빅브라더 사회
냉장고는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기능에 더하여 스스로 인터넷 쇼핑사이트에 접속하여 식품을 원격주문하고 결제까지 처리하는 인터넷 냉장고로 탈바꿈한다. 가스오븐은 요리 사이트에 접속하여 정보를 다운로드받아 스스로 음식을 조리한다. 화장실 변기는 소변 성분을 분석하여 그 사람의 건강 상태를 의료사이트로 보내 건강진단 기능을 하게 되며, 욕실의 욕조도 그 사람의 신체 상태에 가장 적절한 성분과 온도를 함유한 목욕물을 자동으로 받아준다. 또 전동치솔은 치아상태를 점검하여 자신의 주치의에게 정보를 전송해주는 단말기 역할을 한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요금을 지불하느라 자동차가 길게 늘어설 필요도 없어진다. 센서가 자동차 번호판을 판독하여 휴대전화 요금으로 통행료를 부과하기 때문이다.
유비쿼터스가 실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몇 가지 대표적인 적용 사례이다. 유비쿼터스가 구현되는 위의 생활용품들은 확실히 가사 노동의 경감이나 건강 관리, 교통체증 해소 등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혜택을 얻는 대가로 우리는 다른 중요한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인터넷 냉장고와 인터넷 가스 오븐은 오늘 저녁 당신의 식탁 위에 어떤 음식이 올라왔는지, 그리고 당신의 가족들이 무엇을 얼마나 많이 먹는지 속속들이 기록하고 그 정보를 쇼핑사이트에 제공해 줄 것이다. 인터넷 변기와 인터넷 욕조 그리고 인터넷 전동치솔은 당신도 몰랐던 자신의 건강정보를 의료사이트에 알려주게 될 것이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판독기는 통행료만 부과하는데 그치지 않고 당신이 언제 어디를 다녀왔는지까지도 기록해 놓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네트워크가 편재하는 유비쿼터스의 시대는 뒤집어보면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한 전자감시 시스템이 편재하는 프라이버시의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전자감시와 프라이버시 침해는 정보사회의 도래와 함께 진작부터 심각하게 제기되어온 문제이다. 그러나 유비쿼터스 시대의 프라이버시 문제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유비쿼터스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한 필수 요건 중의 하나가 우리의 생활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IP 주소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지금까지 사용해 오던 32비트의 IPv4 주소 체계를 128비트의 IPv6 주소 체계로 전환하는 방식을 통해 가능해졌다. 43억 개의 주소밖에 만들지 못하던 IPv4 체계는 IPv6 체계를 통해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주소를 생성할 수 있게 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래알 하나 하나에까지도 IP 주소를 할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주소 자원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냉장고와 가스오븐, 화장실의 변기와 욕조, 그리고 전동치솔과 자동자 번호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개체마다 제 각기 고유한 IP 주소가 부여된다면 그만큼 IP 추적을 통한 모든 행적의 감시와 기록도 용이해진다. 그 결과 당신의 저녁 식탁 메뉴, 소변 성분, 충치 정보, 심지어 차량 행선지 등 기존 인터넷 시대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던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일상적인 프라이버시 침해가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전자 감시 시스템이 완성되는 것이다.
2. 인간의 배제와 실업의 위험이 편재하는 매트릭스 사회
유비쿼터스 시스템을 갖춘 인텔리전트 주택에서는 집주인의 옷깃에 단 스마트 배지가 신호를 보내서 자동문이 열린다. 그만큼 외부인의 침입으로부터 안전이 보장되는 홈 시큐리티(Home-Security) 시스템이 구축된다. 슈퍼마켓의 모든 상품에 부착된 바코드는 전자태그(RFID :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로 전면 교체된다. 계산대에 물건을 쏟아놓고 일일이 바코드를 읽느라 줄을 설 필요 없이 구입품을 실은 쇼핑 카트가 계산대를 통과하기만 하면 자동으로 계산이 이루어진다.
인터넷 혁명은 컴퓨터를 통한 인간과 사물간의 온라인 네트워크를 구축시켰다. 반면 유비쿼터스 혁명은 사물과 사물간의 네트워크(T2T : Things-to-Things)를 구현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모든 사물에 전자태그(RFID)를 달아 스스로 정보를 발신케 하며, 동시에 센서를 통해 정보를 수신케 함으로써 전자적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사물과 사물간의 네트워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인간은 자연스럽게 배제된다는 점이다.
기존의 자동문이 작동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문 앞에 사람이 서면 중량을 감지에서 문이 개폐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적외선 센서를 이용하는 것으로 문 앞에 서있는 사람이 적외선을 차단하여 문을 열게 하는 방식이다. 두 가지 방식 모두 인간의 존재를 센서가 감지함으로써 자동문이 작동하게 된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인텔리전트 주택의 경우는 인간과 센서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스마트 배지와 센서라는 사물간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문이 작동된다. 센서는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 배지만을 인식할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작고 사소한 예에 불과하다. 보다 더 심각한 상황은 두 번째 예로 든 슈퍼마켓의 계산대 앞에서 벌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에 바코드의 도입이 가져온 유통혁명의 전망과 그 결과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코드는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유통혁명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전망되었다. 하나는 생산자 영역에서 상품의 판매량과 재고량에 대한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제공해 준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소비자 영역에서 빠르고 편리한 계산 처리로 쇼핑환경이 향상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산자 영역에서의 혁명은 이루어졌지만 소비자 영역에서의 혁명은 실현되지 않았다. 바코드의 도입으로 계산대에서 처리 속도가 빨라지자 슈퍼마켓 운영자는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계산원의 숫자를 줄여버렸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계산대 앞에서 소비자들이 줄을 서있는 시간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슈퍼마켓에 고용된 계산원들의 실업만 늘어났다.
계산원의 손을 일일이 거쳐야 하는 바코드 대신 전자태그(RFID)가 상품에 장착된다면 계산 시간은 바코드 시절보다 훨씬 획기적으로 단축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또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줄어든 계산 시간만큼 슈퍼마켓 종업원의 숫자 역시 이에 비례하여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사라지는 종업원들은 유비쿼터스 시대의 본격적인 도래와 함께 나타날 노동시장의 현실을 말해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인간이 배제된 채 사물과 사물의 네트워킹만으로 모든 업무가 처리되는 유비쿼터스 시대는 곧 영화 속에서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로 그려진 매트릭스의 출현을 예고한다.
3. 기계 의존적 삶이 편재하는 사이보그 사회
2002년 5월,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사이보그 가족이 탄생했다. 플로리다주에 사는 제이콥스라는 가족 3명이 각자의 신원과 병력을 기록한 쌀알 크기의 베리칩이라는 것을 피부 밑에 집어넣는 수술을 받았다. 베리칩에는 특별히 고안된 판독기로 스캔하면 칩을 가진 사람의 신상 정보와 의학적 상태를 알려 주는 정보가 담겨 있다. 따라서 응급 상황에서 의료진이 환자의 신원과 집 전화번호, 병력 등을 신속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2003년 10월, 세계적 가전 업체인 필립스는 느닷없이 속옷 시장에 뛰어 들겠다고 발표했다. 필립스가 개발하고 있는 속옷은 실버상품으로 고안된 전자 속옷이다. 섬유 속에 미세한 센서가 부착된 전자 속옷은 이것을 입고 있는 노인의 체온, 심장 박동 수, 혈압 등을 지속적으로 체크하다가 몸에 이상이 감지되면 초소형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통해 즉각 인근 병원에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병원은 전자 속옷에 장착된 GPS 장치로 노인의 위치를 파악하고 이곳에 구급차를 보내는 응급처치 시스템이 이루어진다.
SF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사이보그의 꿈같은 이야기는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제1세대 사이보그가 의료적 차원에서 신체의 일부를 인공심장이나 보철구 등과 같은 기계 장치로 대신하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했다면, 유비쿼터스 시대의 제2세대 사이보그는 컴퓨터와 인터넷의 기능이 신체를 통해 구현되는 ‘네트워크화된 인간’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 온 세상 구석구석에 네트워크가 편재한다는 유비쿼터스는 이렇게 우리의 신체 곳곳으로까지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리칩과 전자 속옷에 전적으로 자신의 건강을 맡겨야 하는 사이보그처럼 인간은 서서히 기계 의존적인 존재로 탈바꿈되고 있다.
기계 장치에 대한 인간의 의존성은 단지 건강이라는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의 의식세계 역시 점점 더 기계장치에 의존하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건망증’이라는 새로운 징후가 그 단적인 예이다. 가까운 주변 사람들의 전화번호는 이제 우리의 두뇌가 아니라 휴대폰과 PDA에 저장된 전화번호부 속에서만 기억될 뿐이다. 즐겨듣는 최신 가요 역시 노래방 화면에 흘러나오는 자막을 보지 않고는 끝까지 따라 부르기 힘든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심리학자 케네스 거겐은 “그동안 인간은 기억을 머릿속에서 전달되는 것으로 봤으나 이제는 외부 장치에 저장한 데이터도 기억의 일부로 봐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지난 2003년 벽두에 불어닥친 1.25 인터넷 대란을 통해 이러한 기계 의존성이 이미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으로까지 확장되었음을 목격한 바 있다. 급속히 확산되는 웜 바이러스는 전 세계의 인터넷 망을 순식간에 마비시켰고, 그 결과 거의 모든 영역에서 사회활동이 일시 중단되면서 엄청난 혼란과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 일대 재앙이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는 다수의 네티즌들이 불안감과 우울증 등 심리적 공황상태를 보이는 등 그 후유증은 겉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특히 인터넷 대란을 몰고 온 웜 바이러스의 전파가 전 세계 컴퓨터의 운영체제(OS)를 장악하고 있는 MS사 프로그램의 취약점을 이용해 이루어졌으며, 그 중에서도 인터넷 강대국임을 자부하던 한국에서 가장 큰 피해가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정 프로그램에 대한 과도한 의존, 그리고 인터넷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자칫 얼마나 위험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4.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짙다
유비쿼터스 시대에 예견되는 문제점들은 그밖에도 수없이 많다. 정보격차의 심화와 보편적 정보접근권의 침해, 인터넷 중독을 능가할 유비쿼터스 중독, 그리고 유비쿼터스 관련 범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포와 위험이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다. 기술적․산업적 이해관계에 입각해서 일단 서둘러 추진부터 해놓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제반 사회문제들에 대해서는 허둥지둥 사후처방에 급급했던 인터넷 혁명기의 시행착오를 유비쿼터스 혁명기에 또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이다.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장밋빛 약속 이면에 드리워진 짙은 그림자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정책적 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유비쿼터스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것은 무작정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의 처량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름다운 e세상, 2004.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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